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하라 신타로/망언 (문단 편집) == [[자국 혐오|일본에 대한 망언]] == [[파일:attachment/dfqaer.jpg]] [[2011년]] [[3월 24일]] 수돗물을 공급하는 가나마치 정수장에서 '''어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''' 된다며 시음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. 찡그린 표정이 억지로 먹으려는 것처럼 보인다. [[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|왼쪽에 있는 남자의 표정을 보시라]]. 당시 일본 뉴스[* [[https://www.nikkei.com/article/DGXNASDG2303J_T20C11A3MM8000/|東京都、水道水「乳児は控えて」 23区と5市 浄水場から基準超す放射性ヨウ素検出 ]] 도쿄시 수도물 유아는 삼가, 정수장으로부터 기준 초과하는 방사성 요오드 검출]에서 수돗물 1킬로그램당 210[[베크렐]]의 [[방사성 동위원소|방사성]] [[아이오딘|요오드]]가 검출되었다고 보도하였다. 일본 후생노동성이 정한 잠정규제치가 유아는 100베크렐, 성인은 300베크렐이라서 '''어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''' 된다며 마신 것이다. 이 수돗물을 마셔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[[췌장암]]이 발견되었고 2022년 2월 1일 89세로 사망했다. [[파일:7HVM0gL.jpg]] [[Dr. 히루루크]]를 합성한 모습. 정치에 막 입문했을 젊은 시절에는 '[[유시민/비판과 논란/참여정부~2020년 이전#s-1|노인들은 나이가 들어서 전두엽이 퇴화해있기 때문에 정치를 맡겨서는 안 된다]]'고 주장했다. 한마디로 늙은이들은 물러나란 소리. 그래 놓고서는 정작 본인은 80대가 되도록 정치활동을 했다. 만화, 애니메이션에 대한 규제안을 낼 때는 [[트위터]]를 통해 ''만화나 애니를 보는 사람들은 전부 인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. 그런 사람들은 여자 사귀는 일도 못 한다."는 망언까지 했다. 완결편 제작 전에 [[니시자키 요시노부]]의 불법 총기소유와 마약 사건 후 절교했다곤 하지만 완결편의 각본은 절교 전에 썼다. 2011년 3월 14일, 기자가 [[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|도호쿠 대지진]]에 대한 의견을 묻자 뜬금없이 고령자 소재불명 문제를 언급했다. 사망한 부모를 [[사망신고]]하지 않고 [[유령연금|노령연금을 장기간 부당 수령한 것]]이 잇따라 적발되었던 사건을 말한다. 일본에서 대지진 발생 전에 한동안 사회 문제로 아주 크게 언급이 되었으나 대지진이 발생하자 대중의 관심이 다 대지진에 쏠려서 묻힌 문제였다. 이시하라 신타로는 이렇게 자국민의 사심과 정치 행태를 비난한 뒤 '''"이번 지진을 잘 활용해서 [[일본인]]의 사리사욕을 한 번쯤 깨끗이 씻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. 역시 이것은 천벌이라고 본다."'''는 초유의 망언을 해 버렸다. 나중에 그 발언을 들은 기자들이 "천벌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지 않느냐"고 묻자 "피해자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이겠습니다만, '''이라고 한마디 덧붙여 두지요'''"라고 대꾸했다고 한다. [[http://www.yomiuri.co.jp/politics/news/20110314-OYT1T00740.htm|이 기사에 의하면]] 그는 '''"일본인만이 떼지어 슈퍼를 터는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"'''는 말도 했다고 한다. [[일본 축구부 단체 절도 사건|그런데 이 말이 개소리라는 게 증명되어 버리고 말았다]]. 더 웃긴 건 선거가 코앞(2011년 4월 10일 실시 예정)이었던 상황에서 이런 희대의 [[개드립]]을 쳤다는 것이다. [[이와테현]]·[[미야기현]]·[[후쿠시마현]]의 일부 선거는 지진으로 연기되었지만 [[도쿄도]]지사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'''재당선'''되었다. 이 망언으로 [[2ch]]에서도 디스를 걸게 되었다 [[카더라]]. 하지만 결국 온갖 망언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그조차 이 망언만큼은 워낙 파급이 컸던지라 다음날인 15일에 바로 '''깊은 사죄'''를 드린다면서 수습에 나섰다. 그러나 또 도졌는지 2011년 4월 25일에는 도민들에게 [[http://jpnews.kr/sub_read.html?uid=9726§ion=sc1§ion2=정치|일본인이 반성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하늘이 용서치 않는다]]는 발언을 했다. 2011년 8월 15일, 이시하라는 [[http://kr.news.yahoo.com/service/news/shellview.htm?articleid=2011081514554661014&linkid=4&newssetid=1352|"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인이 아니다!"]]라고 발언했다. 8월 22일에 나온 잡지 인터뷰에도 [[혐일|자국인 비하 발언]]을 했는데 [[http://news.kukinews.com/article/view.asp?page=1&gCode=int&arcid=0005276845&code=41131211&cp=nv1|"일본인들은 금전욕구와 물욕과 성욕만 갖고 있는 한심한 종족이다."]]는 말을 끼워넣었다. 사실 [[야스쿠니 신사]]는 [[아키히토]] 덴노, 그러니까 신타로를 위시한 일본 극우파들이 떠받들어야 할 대상인 사람조차 참배를 안 한 곳이다. 그런 곳을 참배 안 했다고 까니... 실제로 아키히토는 평화를 지향하는 철저한 반전주의자다. 자세한 건 문서 참고. 2012년 4월 25일에는 [[시즈오카현]]의 영화 촬영장에서 [[아사히 신문]] 기자에게 사람들 앞에서 때린다고 철권통치를 예고했다. 이유는 아사히 신문 23일 석간의 이시하라 비판 기사 때문이라는 듯. [[애니메이션은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구요|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]]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정말로 한심하다고 볼 수 있다. 2012년 10월 25일에는 일본의 청년들을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210281541471&code=970203|"군대에 보내야 한다."고 주장했다.]] 2013년 5월 14일에는 군대와 [[매춘]]은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[[하시모토 도루]]의 [[일본군 위안부]] 망언에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3&aid=0005147810|쉴드를 치고 나섰다]]. 2013년 5월 18일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international/2013/05/18/0602000000AKR20130518021500073.HTML|"(제2차 세계 대전은) 침략이 아니다.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. 역사에 관해서 무지한 것이다"]]라고 말했다. 한국에 대한 망언 문단에서 이미 나왔지만 "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고, 한국이 반대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이익이다."라는 망언을 했는데 이 경우 일본의 안보적 부담 및 위협은 지금보다 수 배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자국의 안보적 부담이 증가하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가 되어 자국에 대한 망언도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